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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웨덴에서 · 엘리 | 동화 같은 힐링 에세이

책 이야기 - 2022. 3. 21. 00:41 by 사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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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웨덴에서 64page

 

시후가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태교 하기 위해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색연필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했고, 참고할 겸 인스타그램에서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찾아보던 중 엘리 작가를 처음 알았다. 뭉툭하지만 아기자기, 미니멀한 그림이 귀여운 듯 예뻐 보였고, 무엇보다 색감이 딱 내 취향이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구경하던 중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구매하게 되었고 지금 책꽂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얼굴 모르는 친구가 이민 간 먼 나라에서의 일상 이야기를 전해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책은 작가가 그린 따뜻한 그림들과 직접 찍은 감성 넘치는 사진들이 가득하고, 거기에 이야기가 더해진 구성이다. 나는 사진과 그림을 감상하고 글을 읽을 때 이미지를 떠올리며 음미하듯 읽었는데 순간마다 전해지는 분위기에 참 많은 힐링을 받았다.

 

 


 

환상의 나라에서

아름다운 자연, 여유로운 사람들,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 등등 내가 바라던 생활의, 듣기 좋은 수식어는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내가 해외에서 살 일은 없다고, 그저 예쁜 사진으로만 잠깐 상상하며 스쳐지나간 나라. 이런 아름다운 나라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치명적인 단점은 '모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곳엔 우리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오빠도 없다.

세계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해도,

외국인인 나에겐 그저 통계와 숫자에 불과하다.
이방인이라는 건 실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항상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음 한편에 늘 시린 빈 공간을 내어둔다.

 

 

그저 좋은 기분이 드는 책일 것 같았건만, 첫 페이지부터 짠함이라니! 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덕분에 나는 이 책에 더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피카 스닥

피카란 스웨덴어로 커피를 의미하는 '카피에'라는 단어를 뒤집어 만들었다고 한다. 속설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노동자들이 일하다 쉬고 싶을 때 감시하는 감독관들이 못 알아듣도록 일부러 단어를 뒤집어서 말했고, 그게 굳어져 지금의 파카가 되었다. 지금은 디저트를 곁들여 커피나 차를 마시며 쉬는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긴장을 풀어도 되는, 나를 쉬게 하는 공식적인 시간. '피카 스닥(피카 시간)'은 파티가 무르익어 술에 잔뜩 취해 있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떠올려보면 술자리는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나는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술자리에선 소모가 큰 편이라 쉽게 지친다. 그런 곳에서 갖는 <비워가는 시간>이라니. 상상만 해도 몸이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비록 지금은 육아를 해야 하니 이런 시간을 가질 여유가 잘 없지만, 나에게도 개인 시간이 생긴다면 스웨덴 사람들처럼 하루에 4번까지는 못하더라도, 온전한 휴식을 위한 15분의 여유를 즐기며 간접적으로 스웨덴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

 

 

사람들도 모두 날씨와 같다

 

"나쁜 날씨가 아니라 다른 날씨가 있는 것 뿐이에요."
다른 것이 비단 날씨만이겠는가. 사람들도 모두 날씨와 같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두 다 다르다.
나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르다."

참 평화로운 말이다.

 

 

<말괄량이 삐삐>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로 만든 어린이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한 등장인물이 날씨가 나쁘다고 불평을 했고, 옆에 있던 사람이 듣고는 빙긋 웃으며 했던 말이다. 나는 이 구절에서 '사람'보다 '날씨'구절인 첫 문장을 읽고 마음속에 파동이 일었다. 20대에만 해도 축축하고 습해서, 걸을 때마다 옷이 젖어 비 오는 날씨가 싫었고, 지저분해지는 길이 싫어 눈 온 다음이 싫었다. 30대가 되니 이런 오늘날 비가 와 특별하고, 여기 온 오늘, 눈이 와 특별했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해왔는데 <나쁜 날씨가 아니라 다른 날씨가 있는 것뿐이에요>라는 한마디로 함축하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참 예쁜 말이다. 나쁜 날씨가 아니라 다른 날씨가 있는 것뿐이다.

 

 

잠시나마 봄을 되찾을 수 있도록

스웨덴의 겨울은 길다고 한다. 물론 그들만의 4계절이 있겠지만, 추운 날씨가 길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는 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압화를 만드신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따뜻한 봄과 시원한 가을이 많이 짧아졌다. 나는 좋아하는 계절을 담아두기 위해 특별히 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매 가을마다 거리를 지나다 한 번씩 낙엽을 주웠다. 물 들어 떨어졌지만 수분을 머금고 있는 최상의 상태의 낙엽을 줍는 것도 어렵고, 그 낙엽을 책 사이에 끼워 보관하고는 잊어버리기 일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 계절을 조금이라도 더 담고 싶어 하는 나만의 작은 습관을 발견해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도 어른이 되고 난 후엔 이면을 보게 된다. 신데렐라에선 계모와 언니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고, 심청전의 심봉사는 그저 한량에, 심청이는 바보 같기만 하고, 흥부 같은 사람이 세상엔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도 안다. 이 책도 처음 읽었을 땐 가볍게, 그저 잔잔하고 따뜻한 힐링 에세이로 받아들였지만, 두 번째 읽을 땐 보이지 않았던 행복해 보이는 모습 뒤의 더 깊은 외로움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담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간간이 표현된 타지에서의 외로움이란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스웨덴의 분위기, 사람들의 마인드, 풍습들을 다큐가 아닌, 작가가 만들어내는 잔잔한 분위기의 이야기로 전해 듣는 시간들이 참 기분 좋았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웃고 울기도 하며 치유받는 게 에세이의 묘미 아닐까.

 

 

 

나의 스웨덴에서
엘리 지음

2019년 6월 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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